
보쿠로 연대기
EP.15 – 그녀의 꿈이 잠들어 있는 곳
폐기된 도서관은 숨 쉬는 것처럼 조용했다.
모든 책장이 무너져 있었고, 먼지 위로 작은 발자국만이 남아 있었다.
그 흔적은 분명 누군가 최근 이곳을 다녀갔다는 것을 의미했다.
“여기야.”
일로우가 작게 속삭였다.
“내가… 처음 꿈을 기억한 곳.”
사에나는 조심스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바로 그곳,
도서관의 가장 안쪽 벽면에 작은 낙서가 남아 있었다.
아이가 연필로 꾹꾹 눌러 쓴 글씨.
“나는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어.
어른이 되면, 이 꿈을 꼭 다시 꺼내볼 거야.”
그 옆엔 흐릿한 선 하나가 그어져 있었다.
마치, 이어질 말을 누군가 의도적으로 지운 듯한 느낌.
“아리아.”
사에나가 나직이 말했다.
레브는 그 이름을 되뇌었다.
방금 전, 문양이 반응하며
그의 손에서 서서히 꿈의 결이 진동을 일으킨 순간—
그 이름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 나왔기 때문이다.
레브는 손을 뻗어 벽면의 글씨에 손끝을 대었다.
그 순간, 손등의 문양이 약하게 빛났다.
동시에 그의 품 안에 있던 동화책이 스스로 열렸다.
그 페이지에는 단 하나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이 노래는 아직 부르지 못한 꿈을 위해 남긴 것.”
“레브, 지금… 네 문양이 반응하고 있어.”
사에나가 숨을 죽였다.
레브는 동화책에 시선을 고정한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건 노래야.”
서판이 진동을 시작했고,
문양은 자장가의 서두를 조율하듯 리듬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건 아직 ‘노래’가 아니었다.
그는 그것이
꿈을 정화하는 방식의 실체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 순간,
도서관 바닥이 뒤틀렸다.
검은 그림자가 벽에서 피어오르며
그들을 향해 몰려들었다.
눈도 없고, 말도 없고,
형체조차 불분명한 어둠.
“악몽체야.”
사에나가 즉시 결계를 펼쳤다.
“그것도… 정화되지 못한, 기억 속 악의.”
레브는 문양에 집중했다.
자장가의 첫 구절이 마음 안에서 선율처럼 맴돌았다.
하지만 그는 아직
그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그건 그의 노래가 아니었다.
그는 단지,
누군가의 자장가를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에나가 어둠을 정화하며 외쳤다.
“레브, 지금이야.
이건 아리아의 꿈이야.
그녀의 기억이 너의 자장가를 부르고 있어!”
레브는 동화책을 다시 펼쳤다.
글자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유는 선택이야.
나는 그 선택을, 스스로 포기했어.”
그 순간,
도서관 중심에서 아리아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녀는 투명한 꿈의 구조체처럼 보였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어릴 적,
정말 날고 싶었어.”
그녀가 속삭였다.
“근데 누군가 그랬지.
자유는 위험하다고.
그래서… 나는 날개를 접었어.”
사에나는 조용히 말했다.
“이건 너의 자장가가 아니야, 레브.
하지만 네가 부르지 않으면,
아리아는 절대 기억할 수 없어.”
그 말에 레브는 문장을 다시 읽었다.
손등의 문양이 부드럽게 빛났고,
그 안에서 단 한 구절이 떠올랐다.
“놓아라.. 자유의 별이여…”
그건 멜로디도 없고,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분명히 자장가였다.
그 순간,
악몽체가 비명을 지르며 사라졌다.
사에나는 숨을 고르며 레브를 바라봤다.
“지금… 방금 네가 불렀던 건…”
레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장가였어.
하지만 내 노래는 아니야.
아리아의 기억에 남아 있던,
그녀가 언젠가 부르고 싶었던 꿈.”
아리아는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도서관의 천장 너머로
빛이 스며들었다.
루프 세계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간의 틈’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서판 위에 작고 선명한 조각 하나가 나타났다.
보쿠로의 첫 번째 기억 조각.
그 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나는 자유를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들을 묶었다.”
레브는 조각을 손에 쥐고
다시 자장가의 첫 구절을 속으로 되뇌었다.
그건 여전히 어색했고,
자신의 언어는 아니었지만—
이제 그는
‘노래를 시작할 수 있는 자’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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