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쿠로 연대기
EP.14 – 자유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
“좋은 아침입니다, 아르벨리온 시민 여러분.
오늘도 빛과 바람이 완벽한 하루를 선물합니다.”
아침 8시.
그 멘트는 하늘에서 흘러나왔고,
동시에 도시 전역에 울려 퍼졌다.
햇살은 완벽하게 각도 조절된 창을 뚫고,
각 집의 거실 테이블 위에 정갈히 놓인 찻잔과 빵 위로 내려앉았다.
사람들은 같은 표정으로 일어나, 같은 옷을 입고,
정해진 발걸음으로 출근길을 나섰다.
그들은 모두, ‘자유롭다’고 믿었다.
레브는 골목 한 켠에서 조용히 서 있었다.
그의 눈 앞엔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그러나 그 움직임은 너무 정확했고, 너무 조화로웠다.
이질감은, 바로 그 완벽함에서 시작됐다.
“방금 지나간 저 남자... 오늘만 네 번째야.”
사에나가 말했다.
레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도, 말투도... 단어 하나 틀리지 않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세계는 루프되고 있다.
매일 아침 8시,
모든 것이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그 안에 사는 이들은
자신들이 되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그것이 아르벨리온이었다.
완벽하게 설계된,
자유의 감옥.
“근데 이상한 애를 봤어.”
사에나가 작게 속삭였다.
“방금 전에… 나랑 눈이 마주쳤어.
그리고, 뭔가 알아챈 듯한 눈빛이었어.”
레브는 고개를 돌렸다.
“누구?”
“이쪽이야.”
그녀는 빠르게 길모퉁이로 이동했다.
거기엔, 작고 헝클어진 금발을 가진 소년이 서 있었다.
“일로우.”
그 소년이 먼저 말했다.
그 이름은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그는 마치 매일 같은 타이밍에 같은 대사를 말하는 것처럼 입을 열었다.
“또, 오늘이야.
근데 오늘의 느낌이 조금 다르다.
너희들도 그렇게 느껴?”
레브는 눈을 좁혔다.
“넌, 지금이 똑같은 하루라는 걸 알고 있어?”
일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아주 가끔,
내가 이전에 봤던 꿈이 겹쳐질 때가 있어.
그런 날은 ‘여기가 가짜’라는 걸 느껴.”
“넌 꿈을 꿔?”
사에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일로우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꿈을 꿀 수 없어.
여기 누구도 그래.”
그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잊기 전에 내가 꿨던 마지막 꿈.
그게 아직 마음 속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 같아.”
그 말에 레브는 동화책을 꺼냈다.
동화책은 약하게 진동하고 있었지만,
일로우를 향해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건… 내가 꿨던 꿈이 아니라,
누군가 ‘내게 남긴 꿈’이었을지도 몰라.”
일로우가 속삭였다.
“누군가…?”
“매일 꿈속에서
내 이름을 불러주던 아이.”
그 순간, 사에나의 눈이 커졌다.
“아리아?”
일로우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맞아.
그 애, 매일 같은 노래를 불렀어.
기억나. ‘날아가, 자유의 별이여…’ 그 노래.”
그 말과 동시에—
성역에서 레브가 들었던 꿈의 노랫말이 겹쳐졌다.
그건 분명
아리아의 잃어버린 꿈이었다.
“그 노래를, 어디서 들었지?”
레브가 다가가 물었다.
“도서관.
아르벨리온 중심부 아래쪽 폐기 구역.
누구도 접근하지 않는 곳.”
일로우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거기만 가면
내가 ‘다시 꿈을 꾸고 싶다’는 생각이 나.”
그 순간,
하늘에서 방송음이 흘러나왔다.
“주의: 자유 교란 의심자 감지.
순찰 수위자, 대상 추적 개시.”
레브와 사에나의 눈빛이 동시에 날카로워졌다.
“가자.”
레브가 말했다.
“아리아의 꿈은, 그 도서관 안에 있어.”
사에나는 서판을 단단히 쥐었다.
“그곳이… 첫 번째 기억의 진입점이야.”
그리고 그 뒤,
일로우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만약…
내가 그 꿈을 끝까지 기억할 수 있다면—
나는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그 말은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지만,
도시 위로 다시 떨어지기 시작한
“기상 음악”과 함께,
세계는 또 한 번
같은 날 아침 8시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소설 > 판타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Episode. 16 – 루프의 하늘 아래에서 (1) | 2025.04.25 |
|---|---|
| Episode. 15 – 그녀의 꿈이 잠들어 있는 곳 (0) | 2025.04.25 |
| Episode. 13 – 아르벨리온의 문을 열다 (0) | 2025.04.25 |
| Episode. 12 – 남겨진 꿈의 노래 (0) | 2025.04.25 |
| Episode. 11 – 그 이름을 부르면 안 돼 (0) | 2025.04.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