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쿠로 연대기
EP.12 – 남겨진 꿈의 노래
밤은 여전히 어둡지 않았다.
성역은 천천히 꿈틀거리며 깨어나고 있었다.
마치, 잊힌 꿈들이 저마다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으려는 것처럼.
사에나는 불 꺼진 제단 앞에서 홀로 서 있었다.
레브는 여전히 포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손등의 문양은 희미하게 식었지만, 그녀는 알았다.
그의 꿈은, 아직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 또한.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잊어버렸던 ‘어떤 꿈’을 다시 느끼고 있었다.
눈을 감자, 오래전의 장면이 떠올랐다.
초록빛 성역.
빛의 가루가 흩날리던 날.
그녀는 아직 어린 소녀였고, 꿈을 정화하는 의식을 배우던 중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꿈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우린 다시 만날 거야.
언젠가, 네가 나를 기억하지 못해도,
난 널 다시 부를 거야.”
아주 어린 소년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시간 속에 삼켜져
이제는 형태조차 기억할 수 없는 꿈이 되어 있었다.
“네가 지켜야 해.”
사에나가 자신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이번엔… 다시 잃어버리지 않도록.”
그녀는 천천히 돌아섰다.
그리고 레브에게 다가갔다.
“레브.”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 눈동자엔 여전히 흔들리는 꿈의 조각들이 있었다.
“차원에 들어가기 전에…”
사에나는 숨을 골랐다.
“네 궤적을, 다시 고정해야 해.”
“내 궤적을?”
레브가 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넌 꿈의 결이 너무 얇아.
차원 안으로 들어가면… 네 꿈 자체가 흩어질 수도 있어.”
그녀는 손을 뻗어, 레브의 손등 문양 위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서늘한 느낌.
그러나 동시에, 깊은 곳에서부터 따뜻한 파동이 일었다.
“꿈 공명 의식.”
사에나가 조용히 말했다.
“내 꿈의 결과 네 꿈의 결을 맞추는 거야.
서로가 서로를 잊지 않도록.”
“서로가 서로를...”
레브가 낮게 되뇌었다.
그 말은 어딘가, 그의 잃어버린 꿈 속에 남아 있던 문장처럼 느껴졌다.
의식은 간단했다.
사에나가 고리 모양의 마법진을 두 사람 주위에 펼치고,
각자의 꿈의 결을 한 번 공명시킨다.
하지만 위험도 있었다.
—만약 둘 중 하나라도 꿈의 결이 너무 약하거나, 왜곡돼 있다면
둘 다 차원의 심연으로 끌려들어갈 수 있었다.
“준비됐어?”
사에나가 물었다.
레브는 잠시 숨을 골랐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리고—
두 사람은 손을 맞잡았다.
빛은 없었다.
소리도 없었다.
오직 꿈의 결만이, 조용히 서로를 스쳐갔다.
사에나는 깜짝 놀랐다.
레브의 꿈은—상상 이상으로 ‘깊었다.’
그리고 그의 결은, 사라진 줄 알았던 ‘어떤 이름’을 향해 천천히 뻗어 있었다.
“…레…나…”
아주 어릴 적 자신이 들었던 이름의 조각.
그 이름이, 레브의 꿈 속에도 잔잔하게 살아 있었다.
의식이 끝났을 때,
두 사람은 숨을 몰아쉬며 서로를 바라봤다.
레브의 문양은 조금 더 또렷해졌고,
사에나의 눈동자는 조용히 떨리고 있었다.
“...이제 괜찮아.”
사에나가 말했다.
“넌, 네 궤적을 잃지 않을 거야.”
레브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는 알았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자신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꿈은,
먼 차원 아르벨리온의 한 소녀의 꿈 속에서도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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