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쿠로 연대기
EP.11 – 그 이름을 부르면 안 돼
기억은..
꿈처럼 사라진다.
그러나 어떤 꿈은,
사라진 후에 더 선명해진다.
성역은 조용했다.
마치 방금까지 있었던 모든 진동과 기척이 거짓이었던 것처럼.
하지만 사에나는 알았다.
무언가—아주 오래된 꿈이,
레브의 이름 속으로 ‘기억을 심었다’는 것을.
그녀는 천천히 주저앉아 서판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 레브의 문양 일부가 그 위로 옮겨갔다.
그리고 남은 건, 그의 이름에서 사라진 조각 하나.
사에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가 그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지우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레브는 그 옆에서 말없이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는 여전히 문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눈동자는 어느 때보다 조용하고 고요했지만—이질적인 깊이를 품고 있었다.
“네 이름이 반응했어.”
사에나가 말했다.
“누군가가, 네 이름의 구조를 바꿨어.”
“…나는 기억하지 못해.”
레브는 중얼이듯 말했다.
“그 조각이… 원래 있었는지조차, 지금은 알 수 없어.”
그는 손등 문양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아직 빛나고 있었다,
방금 전보다 훨씬 흐릿하게.
“이건 ‘꿈의 궤적’이야.”
사에나는 서판을 들고 천천히 말했다.
“꿈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야.
꿈은 이름이 만들어낸 길이고, 이름은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야.”
“그럼 지금 나는…”
레브의 말이 흐려졌다.
“네 궤적이 흔들리고 있어.”
사에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 흔들림은 네 안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 성역 전체를 흔들고 있어.”
그 순간,
성역 안쪽의 벽면에서 은은한 진동이 울렸다.
서판이 다시 반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엔 문양이 아니라,
소리였다.
사에나는 깜짝 놀라 서판을 내려놓았다.
서판은 마치 누군가의 속삭임을 반복 재생하듯,
희미한 목소리를 반복했다.
“…그 이름을… 부르지 마…”
“…그 이름은… 나를 무너뜨릴 거야…”
그 음성은 한 아이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그러나 동시에, 오랜 시간을 견딘 존재의 낮은 메아리 같기도 했다.
“이건… 기억 파편이 아니야.”
사에나가 낮게 말했다.
“이건 꿈 속에 감춰진 ‘자기 보호 장치’야.”
레브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 ‘이름’이—잃어버린 그 꿈의 이름이—
다시 불리게 된다면,
자신이 돌아오는 게 아니라,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이름을 되찾고 싶어?”
사에나가 조용히 물었다.
“그 이름이 너의 정체라면… 그건 꿈이 아니라, 기억일지도 몰라.”
레브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문을 바라봤다.
열리지 않은 포탈.
그러나 방금 전, 서판이 반응한 지점에서
꿈의 결 하나가 미세하게 ‘벌어진’ 걸 그는 느낄 수 있었다.
“그 이름은, 내가 만들지 않았어.”
그가 말했다.
“그 이름은… 누군가의 꿈 속에서 주어진 거야.”
사에나는 조용히 서판을 닫았다.
그리고 마법진으로 봉인했다.
“그 이름을 부르면,
지금 우리가 쌓아온 모든 궤적이 다시 흩어질 수도 있어.”
“그럼 우리는…”
레브가 고개를 들었다.
“잊은 채로 나아가야 해?”
사에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그래야 해.
꿈은 되찾는 게 아니라—깨닫는 거니까.”
그 순간, 성역의 천장이 아주 미세하게 갈라졌다.
악몽체의 그림자가 아니다.
포탈도 아니다.
그건—
지워졌지만 살아 있는 꿈,
레브의 이름이 아직 남아 있는 차원 어딘가가 흔들리기 시작한 신호였다.
그리고 그 흔들림은,
먼 차원—아르벨리온의 중심에서
한 소녀가 매일 밤 반복된 꿈 속에서 레브의 이름을 속삭이는 것과 동시에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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