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쿠로 연대기
EP.10 – 문을 여는 자
포탈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앞에 선 레브는 이미 ‘무언가’를 열어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꿈이었다.
정확히는 꿈의 결, 꿈의 뿌리.
누군가의 꿈이, 그를 부르고 있었다.
“빛의 결이… 어긋났어.”
사에나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그녀는 장치 주변을 빛의 고리로 봉인하며, 균열 너머에서 뻗어오는 잔류 파장을 읽어내고 있었다.
“이건 단순한 흔들림이 아니야.
어떤 ‘의지’가 꿈을 거부하고 있어.”
레브는 말을 아꼈다.
하지만 손등의 문양은 그를 대신해 반응했다.
별빛처럼 깜빡이는 그 문양은 조금 전의 악몽체와 접촉한 뒤로 계속 미세한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포탈이 나를 인식했어.”
그가 말했다.
“내가 여는 걸... 기다리는 것 같아.”
“그렇지 않아.”
사에나는 바로 반박했다.
“포탈은 너를 ‘읽었을 뿐’이야.
그 안에 있는 건 꿈이 아니야.
이미 오염된—꿈의 잔재들이야.”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판이 반응했다.
그가 성역 깊은 곳에서 회수해온 에일른의 기억 서판.
그 위에 갑자기 떠오른 문양은 기이한 곡선과 파형으로 구성된 낯선 상형.
이해할 수 없는 문자였지만, 레브는 알 수 있었다.
그건 누군가의 이름이었다.
“레—브...”
사에나가 무의식중에 그의 이름을 부르자,
서판 위의 문양이 진동했다.
그리고, 문 앞에서 새어 나온 바람이 스산하게 지나갔다.
“이건... 꿈의 잔재야.”
사에나가 서판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누군가가 너를 부르던 꿈.
그리고 그 꿈이 지워졌을 때, 그 이름의 조각만이 남은 거야.”
레브는 서판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을 얹었다.
그러자 머릿속 어딘가에서 낡은 목소리가 울렸다.
“—브… 아직 넌 기억하면 안 돼.”
전부 들리진 않았다.
하지만 ‘아직’이라는 단어는 확실히 남았다.
그리고 그 단어가 남긴 진동은, 레브의 문양을 한 번 더 반응시켰다.
그는 다시 포탈을 바라봤다.
형체도 없고, 입구도 없는 그 ‘꿈의 틈’이—지금은 마치 살아 있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사에나.”
“응.”
“만약 이 문이 열리면… 그 안에서 나오는 게 ‘나’의 일부라면,
넌 나를 막을 수 있어?”
사에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너의 꿈이야.”
그녀는 천천히 말했다.
“나는 다른 이의 꿈을 멈출 수 없어.
그저, 함께 지켜볼 뿐이야.”
그 말은 위로도, 결의도 아니었다.
그리고 레브는 그 말을 들으며 문 앞에 선 자신의 두 발이,
어느새 전보다 훨씬 가까워졌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였다.
포탈 외곽에서 텁 하고 낮은 진동이 울렸다.
누군가가, 아니—무언가가 안에서 ‘문을 두드린 것처럼’
짧고 묵직한 울림.
사에나는 반사적으로 결계의 서클을 전개했다.
빛이 지면을 감싸고, 기척이 서판에 반사됐다.
“기억이... 모여들고 있어.”
그녀가 말했다.
“문이 열리지 않았는데도,
꿈의 조각들이 반응하고 있어.”
그 말과 동시에, 서판 위 문양의 일부가 사라졌다.
아니,
지워진 게 아니라—
레브의 손등에서 무언가가 서판으로 옮겨간 것이었다.
그의 이름.
그의 기억.
그의 꿈 중 하나가, 열쇠로 바뀌고 있었다.
레브는 그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알았다.
지금 잃어버린 이 조각은 단순한 단어 하나가 아니었다.
그건 과거의 자신을 증명하던 ‘이름의 꿈’이었고,
이제 그것은 포탈의 문을 열기 위한 대가로 제물처럼 바쳐진 것이다.
“이 문은 내가 만든 꿈이 아니야.”
그가 낮게 말했다.
“그런데도...
이 꿈은 나를 열쇠로 쓰고 있어.”
사에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더는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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