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쿠로 연대기
Ep.06 — 성역의 수호자, 사에나
“너는 잊었지만, 나는 널 기다려왔어.”
: 성역의 심장
문 너머는 어두웠다.
레브의 발끝이 바닥에 닿자,
멈춰 있던 공간이 ‘또각—’ 소리를 내며 깨어났다.
그 울림은 마치 깊은 우물 바닥에 떨어진 돌처럼,
공간 전체에 잔잔한 진동을 퍼뜨렸다.
서서히 벽면이 빛을 머금었다.
은빛으로 뒤덮인 거대한 공간,
천장에는 별무늬처럼 박힌 수정들이 스스로를 반사하며
서로의 빛을 모아내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정지된 시계장치 같은 석조 제단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치 세상이 마지막으로 ‘시간’을 숨 쉬던 순간을
그대로 봉인한 채 놓여 있는 듯한 형상이었다.
레브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 제단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숨결조차 공간의 섬세한 균형을 깨뜨릴까 조심스러웠다.
그 순간—
“기억났니?”
: 등장
그 목소리는 바람처럼 스며들었다.
어디선가 들려왔지만, 어느 방향에서도 오지 않았다.
공기 속에 맺힌 물처럼,
이 공간 자체가 직접 건네는 말 같았다.
레브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 한 소녀가 서 있었다.
하얀 단발머리, 보랏빛 눈동자, 그리고 약간 뾰족한 귀.
그러나 그녀의 눈빛은 수백 번의 계절을 지나온 듯 고요했고,
입가의 미소는 오래된 약속처럼 희미했다.
그녀의 복장은 이 도시에서 본 적 없는 형식이었다.
은색과 옥색이 혼합된 의복에는
꿈의 결정을 상징하는 문양이 수놓아져 있었고,
빛이 닿을 때마다 천이 서서히 반짝이며 살아 움직였다.
“너는 누구지?”
“…사에나. 이 성역의 마지막 수호자야.
그리고 네가 올 거란 걸… 알고 있었어.”
그녀는 계단 아래에서부터 조용히 올라왔다.
그 발걸음에는 ‘의미’가 있었다.
수많은 꿈과 시간의 파편을 품은 존재로서의 무게.
레브는 그 시선을 마주한 채,
자신의 안에서 무언가 오래 잠들어 있던 이름을 부르듯
숨을 들이켰다.
그 만남은 시작이 아니라,
아주 오래된 재회의 한 장면 같았다.
: 처음의 대화
“왜… 날 기다렸다는 거야?”
“왜냐하면, 너만이 이곳을 다시 깨어나게 할 수 있었으니까.”
사에나는 조용히 손을 뻗어
레브의 손등에 새겨진 문양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말보다 깊었고,
손끝이 문양 위를 지나갈 때마다
은은한 빛이 숨 쉬듯 반짝였다.
“그건 단순한 무늬가 아니야.
그건 ‘기억된 꿈’이야.
이 세계가 잊은, 그러나 너만이 끝까지 품고 있던 꿈.”
“나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단지… 이끌렸을 뿐이야.”
“…그거면 충분해.
네가 따라온 그 이끌림이, 곧 ‘세계가 다시 숨 쉴 수 있는 시간’이니까.”
레브는 그 순간, 스스로가
‘무언가 알 수 없는 꿈’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 사에나의 이야기
“이곳은 과거에 ‘꿈의 정수’를 정제하던 성역이었어.
이 세계의 모든 차원에서 흘러든 꿈들을
정리하고, 분별하고, 저장하던 장소.”
그녀의 목소리는 먼 시간을 지나온 이야기처럼
서사와 바람을 함께 품고 있었다.
“그럼… 여긴 꿈의 심장이야?”
“…그렇게도 불렀어.
하지만 그 심장이 멈췄을 때,
이 세계의 모든 ‘리듬’도 멈추기 시작했지.”
사에나는 눈을 감고 조용히 이어갔다.
“이 공간은 감정이 아닌 꿈으로 이루어져 있었어.
그건 단순한 바람이나 상상이 아니라,
사라지기 직전까지 존재했던 ‘의지’의 흔적이었지.”
“그리고 지금,
그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어."
"...네가 왔으니까.”
그녀의 말은 이해 할 수 없었지만
내 안의 무언가는 이해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 파문
레브의 발밑, 제단 아래로 빛의 물결이 퍼졌다.
그건 물이 아니었고, 불도 아니었다.
오래된 꿈들이 깨어날 때 생기는 잔상,
기억의 반향이었다.
빛은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퍼졌다.
마치 어두운 수면 아래서부터 차오르는 물결처럼.
공간 전체를 ‘과거의 파동’으로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이건… 내 안에서 느껴져.”
“당연하지.
넌 잊었지만, 이 세계는 널 한 번도 잊지 않았으니까.”
그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그건 ‘기억된 세계의 환대’였고,
무언가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운명의 고리였다.
다음 화 예고
Ep.07 – 첫 번째 각성
레브는 성역의 중심에서 잊힌 첫 번째 차원의 꿈을 깨운다.
그리고 세계는, 작지만 분명한 ‘변화’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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