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판타지

Episode.03 — 감정이 사라진 사람들

올 오브 노션 2025. 4. 24. 23:25
반응형

 

보쿠로 연대기

Ep.03 — 감정이 사라진 사람들


“표정 없는 얼굴들 사이에서,
 나만 숨을 쉬고 있다는 걸 자각했다.”


: 복사된 하루

‘삐─삐─’ 

 

아침은 정확히 7시에 시작되었다.


알람 소리는 규칙적인 톤으로 울렸고,
커튼은 자동으로 열리며 흰빛을 뿌렸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같은 시간에 똑같은 출근길을 밟는다.

 

지하철 안에는 말이 없었다.
가끔 들리는 소리는 구두의 또각또각 발소리와,
전광판이 띠링거리며 알려주는 정보뿐이었다.

 

정지된 물결 위에 떠 있는 풍경 같았다.


그 안에서 레브는 문득 깨달았다.


‘이 풍경은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다.
그저 무표정하다.’


: 공허한 얼굴들

카페에서 줄을 선 사람들.


각자의 이름이 불려도 “네”라는 목소리는 기계음 같았다.

 

'징-'

아이스커피,

 

'띵-'

토스트,

 

'스윽-'

카드 긁는 소리.


“감사합니다” 대신 고개만 까딱.

 

레브는 문득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아무런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마치 음악조차 ‘들리는 것’이지,
‘느껴지는 것’이 아니게 된 세계.


귓가에서 흐르던 멜로디는
물 속에서 녹아버린 색소처럼 퍼지고 있었다.

 

‘왜 나만 이게 이상하다고 느끼는 걸까.’

그의 속눈썹이 떨렸다.


그리고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얼굴이 무서워 보였다.


: 이질감의 정체

횡단보도 앞.
파란불이 켜지자, 사람들은 동시에 발을 내딛었다.


앞만 보고 걷는 군중 사이에서,
레브는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불안감에 걸음을 멈췄다.

 

‘이건...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감정을 숨기고 있는 건 아닐까?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왜 아무도… 웃지 않아?”

 

그 순간,

 

 ‘펄럭—’ 


가장자리 벽에 붙은 낡은 벽보 하나가
바람에 소리 내며 흔들렸다.

 

『감정 표현은 질서 파괴의 징조입니다』

 

이 도시는 감정을 병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 작은 반응

그날 저녁, 레브는 버스를 타지 않고 걸었다.


발밑에 떨어진 낙엽이 바스락 소리를 내며 부서졌고,

가로등 아래 노란빛이 길게 늘어졌다.

 

훌쩍-

“춥다...”

그 말과 함께,

그는 코끝으로 찬 공기를 들이마셨다.

 

'...?!'
감정 하나가 반짝 튀어올랐다.

작지만 확실하게.

 

세상이 말한 '불필요한 반응'이
지금 이 순간, 그의 가슴에서 조용히 피어나고 있었다.

 

‘내가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다시 살아 있게 만든다.’


📌 다음 화 예고
Ep.04 – 이상 현상
복원되지 않은 세계에서 작은 균열이 시작된다.
도시의 어딘가, 감정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반응형

'소설 > 판타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pisode. 05 — 성역의 문  (0) 2025.04.25
Episode. 04 — 이상 현상  (0) 2025.04.24
Episode.02 — 몽멸의 밤  (0) 2025.04.24
Episode.01 잊힌 동화책  (1) 2025.04.24
Prologue. 보쿠로 연대기: 꿈이 사라진 날  (0) 2025.04.24